대법관 26명 시대의 역설, 1심 재판은 더 길어진다
사법부의 구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법관 증원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며 최종 확정됐다. 상고심 사건의 만성적인 적체를 해소하겠다는 명분 뒤에, 정작 국민의 삶과 직결된 1·2심 재판의 공동화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대법관 한 명이 연간 수천 건의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과도한 업무 부담은 재판 지연과 부실 심리 논란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특히 상고 이유가 없다고 판단되면 별도의 심리 없이 기각하는 '심리불속행' 제도는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에 꾸준히 직면했다.

이번 법 개정의 핵심은 1987년 이후 14명으로 유지되어 온 대법관 정원을 26명으로 대폭 늘리는 것이다. 법안 공포 2년 후부터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12명을 증원하며, 이를 통해 대법관 1인당 담당 사건 수를 획기적으로 줄여 상고심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 입법 취지다.
문제는 대법관 증원이 필연적으로 재판연구관의 대규모 충원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대법관의 사건 검토를 보좌하는 재판연구관은 대부분 1, 2심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핵심 법관들로 채워진다. 늘어나는 대법관 12명을 보좌하기 위해선 최대 100명에 가까운 숙련된 판사들이 하급심을 떠나 대법원으로 이동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미 1심 민사 합의부 사건 처리 기간이 10년 새 70% 이상 급증하는 등 하급심 재판 지연이 심각한 상황에서, 숙련된 법관의 추가 유출은 사실심의 기능 부전을 초래할 수 있다. 법률 적용의 적정성을 따지는 법률심을 강화하려다,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사실심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결국 1심 재판의 질적 저하와 불복률 상승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는 상고심 사건을 다시 폭증시키는 악순환을 낳을 것이라는 비판이 법조계 내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상고심 적체 해소라는 목표가 오히려 하급심 재판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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