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유일 경쟁작 '호프'…나홍진이 그린 희망들의 충돌
제79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한국 영화 '호프'가 전 세계 영화인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베일을 벗었다. 뤼미에르 대극장을 가득 메운 2,300여 명의 관객 앞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나홍진 감독은 상영 다음 날 진행된 인터뷰에서 의외의 소감을 전했다. 그는 전날의 화려한 상영을 두고 "테크니컬 리허설"이었다는 파격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고민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시사했다. 취재진에게 편집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그의 모습에서 거장다운 겸손함과 동시에 끝없는 예술적 집착이 묻어났다.실제로 영화 '호프'는 칸 공개 직전까지도 치열한 후반 작업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나 감독은 상영 불과 나흘 전까지 수정을 거듭했으며, 인터뷰 당일에도 시각과 청각 모든 기술 파트가 전쟁 같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영화를 두고 "여전히 진화 중인 생명체와 같다"고 정의하며, 칸에서의 첫 상영이 마침표가 아닌 더 완벽한 결과물을 향한 과정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행보는 완벽주의자로 정평이 난 그의 예술 세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작품의 탄생 배경에는 감독이 전 세계적으로 느끼고 있던 막연한 위기감과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홍진 감독은 현대 사회를 뒤덮고 있는 보이지 않는 폭력과 전쟁의 전조 현상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온 세상이 부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임박해 있는 거대한 위협을 영화적 언어로 풀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불안감은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 양식과 심리 묘사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관객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의 중심을 이끄는 주인공 범석은 기존 영웅 서사의 인물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는 거대한 위협 앞에서 흔들리고 도망치고 싶어 하며, 확신 없는 걸음을 내딛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로 묘사된다. 나 감독은 범석의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설명했다. 용기와 비겁함, 영악함과 투박함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면모가 투영되었을 때 비로소 실제 인간다운 캐릭터가 완성된다는 철학이다. 관객들은 범석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거울처럼 마주하게 된다.

제목인 '호프'에 담긴 중의적인 의미도 흥미롭다. 나홍진 감독은 이 영화를 단순한 희망의 메시지가 아닌 '희망들의 충돌'에 관한 기록이라고 정의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악의 없이 자신의 희망을 쫓지만, 그 선한 의지들이 부딪히며 발생하는 파열음이 극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누구도 악인이 아니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비극은 인간관계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곡성' 이후 10년 만에 칸 경쟁 부문에 복귀한 나홍진 감독은 이번 초청에 대해 깊은 영광과 떨림을 감추지 않았다. '추격자'를 시작으로 '황해', '곡성'에 이어 네 번째로 칸의 부름을 받은 그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칸 월드 프리미어의 중압감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세계 영화계의 정점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위치를 증명한 나홍진의 '호프'는 칸에서의 열기를 뒤로하고 이제 전 세계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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