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 입고 편의점…에티켓인가 민폐인가
기록적인 폭염으로 해수욕장을 찾는 인파가 급증하면서 해변 복장의 허용 범위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부산 해운대 등 주요 관광지 인근 카페와 편의점에서는 수영복이나 잠옷 차림의 손님과 이를 제지하려는 업주 사이의 실랑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는 해변 백사장 안에서만 허용되던 과감한 노출 복장이 이제는 도심 마트와 대중교통 시설까지 진출하면서 관광객의 자유와 주민의 정서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다.이러한 논란의 중심에는 집 근처 외출복과 실내복의 경계가 모호해진 '원마일웨어' 트렌드가 자리 잡고 있다. 입는 사람 입장에서는 편안한 활동복일 뿐이지만, 이를 마주하는 타인에게는 사적인 안방 차림을 공공장소에 그대로 노출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샤워가운이나 비키니 위에 얇은 타월만 걸친 채 상업 시설을 이용하는 행태가 잇따라 포착되면서, 단순한 패션의 취향을 넘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현행법상 이러한 복장을 강제로 규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경범죄 처벌법은 성기나 엉덩이 등 특정 신체 부위를 노출해 불쾌감을 주는 경우만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어, 일반적인 수영복 차림을 법적으로 제재할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과거 헌법재판소 역시 처벌 기준이 모호한 과다노출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어, 공권력이 개인의 복장에 개입하기보다는 노출 부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식으로 법령이 개정된 상태다.
법적 처벌과는 별개로 개별 영업장은 자체적인 복장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음식점이나 카페 등은 위생 관리와 쾌적한 영업 환경 조성을 위해 수영복 차림의 입장을 제한하는 '노 키즈 존'과 유사한 형태의 운영 방침을 세울 수 있다. 실제로 일부 대형 마트와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는 휴가철마다 반복되는 노출 복장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매장 입구에 복장 가이드라인을 게시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해외 유명 관광지들은 이미 해변과 도심의 경계를 법적으로 명확히 구분하여 엄격한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의 주요 도시들은 시내 중심가에서 수영복만 입고 돌아다니는 행위를 도시 이미지를 해치는 행위로 규정하고 수십만 원 상당의 벌금을 매긴다. 이는 관광객의 자유보다 거주민의 삶의 질과 도시의 품격을 우선시하는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국내 지자체들도 참고할 만한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국내 지자체들은 아직 단속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직접적인 개입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해운대구청 등은 민원이 빗발치는 구역을 중심으로 에티켓 준수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해변과 일상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에 맞춰, 관광객 스스로가 장소에 맞는 복장을 선택하는 시민 의식과 함께 업장별로 명확한 출입 기준을 미리 고지하는 문화 정착이 시급한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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